비트코인은 종교다 - 피자데이
폴 크루그먼이 비트코인은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사이비 종교 (cult) 라 지적했습니다. 크루그먼은 비트코인의 종말을 예측하는 것을 포기했다네요. 언제나 새로운 신자가 들어올 수 있어서라는데…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105201348i
이 분이 어떻게 이런 결론에 다다랐는진 모르겠지만, 저도 과거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고, 크루그먼과 달리 당시 저는 직후 예금을 깨고 비트코인을 매수했습니다.
1. 교환 매체 기능을 유지하려면.
무언가 화폐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1) 가치 저장이 가능해야 하고 2) 교환 매체로 기능해야 합니다. 교환 매체 기능이 약해질수록 화폐보다는 자산으로서 역할이 커지겠죠.
그렇다면, 화폐에 있어 교환 매체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많은 답들이 오가겠지만 저는 “믿음”이라고 봅니다. 발권주체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 내것을 비슷한 가치로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말입니다.
우리가 원화로 거래하는건 남들도 원화로 거래하기 때문이지, 뭐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고 봅니다. 남들도 다 그러니까. 하지만, 교환 매체 기능을 “시작”하기 위한 조건은 좀 다르지요.
2. 교환 매체 기능을 “시작”하려면.
국가의 화폐는, 정부의 선언으로 세수로 받기 시작하면 그날부터 바로 교환 매체 기능 on입니다. 시작된 이후부터는 남들도 다 쓰니까 별일 없는한 계속 사용하게 되구요.
비트코인은, 누군가 심심풀이로 인터넷 게시판에 던진 게시글로 인해 교환 매체 기능을 시작했습니다. 11년 전 오늘 (5/22), 그렇게 1만 비트코인이 피자로 교환됐습니다. 하루밤 농담으로 끝날수도 있었지만 그후 비트코인은 실크로드란 암시장을 통해 교환 매체로 기능함을 만천하에 알렸고, 그 후부터는 시장 참여자들의 믿음, 내 비트코인을 다른 사람이 언제든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3. 믿음에 기반이 있는가
동일한 결론을 내렸어도 크루그먼과 제가 다른 것은, 이 비트코인 종교에 대한 믿음의 기반을 찾은 곳이 달라서라고 봅니다.
크루그먼은, 비트코인 구매자들의 믿음이 어디에 기반한다고 봤을까요. 아마도, 장래에 받아줄 (그것도 더 비싸게 받아줄) 멍청이가 늘 있어서 구매한다고 봤으리라 봅니다. 이렇게 해석해도, 비트코인이 종교로서 새로운 신자를 계속 받아들이면서 커질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거든요. 실제로 그런 사람도 많고.
하지만, 적어도 제 믿음은, 수 많은 노드들에 분산되어 저장/갱신되어 블록당 1메가씩 야금야금 커지는 350기가의 원장(ledger)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누가 폐기도 못하고, 이걸 없애려는 51% 어택자도 기껏해야 그가 그토록 없애려는 비트코인을 보상으로 받아갈 뿐입니다.
제가 그렇듯, 이 원장을 믿고 거래하는 다른 사람이 계속 있을 것이고, 더 늘어날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장래에 받아줄 멍청이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더 포함해서요.
이 원장을 공유하는 노드 수가 많아질수록 제 믿음이 더 공고해질 순 있겠지요. 아이러니하게도, 2017년에 비해 가격은 많이 올랐지만, 노드수는 별 변화가 없습니다.
하락장에 속상하시겠지만, 10000비트코인으로 피자 사먹은 사람(라즐로 핸예츠)을 기리며 다들 피자 한판 시켜드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