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초보자 무모한 설산 등반기
우선 초보자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평소 등산이랑은 담쌓고 지낸 등반기이니
재미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등산애호가가 아닌 저처럼 겨울 한라산 한번 올라봐야지 하는 일반인분도 꽤 있을거라 생각해서 적어봅니다. 현재 제주도 거주중이라 몇년에 한번씩 한라산 등산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약 5년전 관음사코스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랐었습니다. 그때도 엄청난 설산이었는데 등산화도 아닌 운동화 달랑 신고 스패츠, 아이젠, 등산스틱도 없이 무모하게 올랐습니다. 대충 방풍되는 바지에 후드없는 슬림패딩, 털장갑, 배낭엔 500ml 생수한통이 챙겨간 장비 전부였습니다. 등-하산 하면서 수십번 넘어지면서 결국 백록담 찍고 내려왔는데 며칠동안 엄청난 근육통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에 오른 코스는 어리목 - 남벽분기점 코스이구요. 자가용을 타고가서 왔던길로 되돌아와야 했습니다. 이번엔 5년전 등산때와 달리 고어등산화, 고어 스패츠, 아이젠, 등산스틱은 챙겼으나 여전히 가방엔 500ml 물한통만 챙겨갔습니다. 복장은 그때와 비슷하게 슬림패딩에 누빔처리된 바지, 털장갑이 전부였구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남벽분기점 1km 정도 남기고 실패하고 되돌아 왔습니다. 전날 술먹고 자고일어나서 아침도 굶고 갔는데 윗세오름 휴게소 다다를쯤엔 흔히 군대 행군때 먹던 에너지바나 사탕 같은게 절실하게 땡기더라고요. (여담이지만 군시절 소대작계 산악행군할때 걸으면서 먹던 사탕, 에너지바같은 당분있는 음식이 엄청난 도움이되더라고요) 휴게소에서 다들 컵라면 드시는거 볼땐 하산해서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더 맛있어 보였습니다. 만약 휴게소에서 컵라면을 팔았다면 1~2만원이라 해도 사먹었을 겁니다. (다음에 갈때 에너지바, 온수와 컵라면, 믹스커피는 꼭 챙겨갈겁니다.)
전날 술먹고 빈속에 간단한 에너지바도 안챙겨갔으니 에너지고갈이 엄청났습니다만 그것도 결정적인 실패 요인은 아니었구요. 남벽분기점 가는길에 엄청난 칼바람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슬림패딩에 누빔바지만해도 아무리 설산이라해도 땀범벅되고 충분하다생각했는데 후드도 카라도 없는 슬림패딩이라 목부터 귀, 머리는 그냥 칼바람에 노출 되어 있었거든요. 남벽 가는길에 뒤에서 칼바람이 때리는데 오는길이 걱정되더라고요. 특히 귀는 미친듯이 시렵고... 이러다 귀쪽 동상걸리거나 잘못될수도 있겠다 싶어서 결국 1km 정도 남겨두고 되돌아왔습니다. 예상대로 한발자국씩 떼는것도 고역이었습니다. 겨울 설산에서 조난당하면 이래서 죽는구나...싶을정도로 엄청난 칼바람이었습니다. 다시 윗세오름에 가까워질수록 언제그랬냐는듯이 바람이 잠잠해지더라고요. 사실 안부는건 아니었지만 남벽 가는길에 비하면 애교일정도였습니다.
며칠뒤 다시 도전할까 합니다. 이번에 느낀게 겨울설산은 장비를 많이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고가의 장비가 아닌 기본이 절실하게 생각나게 해주더라고요.
1. 바람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부위가 있어선 안된다, 후드달린 점퍼는 기본에, 바라클라바, 넥워머 등등 꼭 챙겨가야 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장갑만해도 굳이 고어류 아니라도 털장갑만해도 있고없고가 엄청난 차이가 느껴지더라고요.
2. 간단한 요기거리 꼭 챙겨갈것 취향에따라 에너지바, 사탕류, 빵은 꼭 챙겨야겠단 생각입니다. 특히 저처럼 과민성장증후군이 있어서 혹시 등산도중 배탈날까봐 아침 거르고 가는경우 에너지 보충에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거기에 정상부근 휴게소에서 먹으면 지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을 컵라면과 믹스커피까지 있으면 좋을거 같단생각이 들었습니다.
3. 손수건 손수건도 빠뜨리고 갔는데 겨울 설산 콧물 엄청나옵니다... 다행히(?) 휴지는 챙겨갔기에 여러겹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어두고 풀고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지만 손수건도 꼭 챙겨가야겠단 생각이들었습니다.
4. 자외선 차단 설산이 눈과 피부에 반사되는 자외선이 엄청났습니다. 눈부심은 말할것도 없이 집에 돌아오니 얼굴이 익었더라고요. 편광 고글과 모자(일반 모자도 상관없지만 가끔씩 떨어지는 눈보라도 막을겸 고어류로 된거면 더 좋을거같단 생각입니다) 보온뿐만 아니라 자외선 차단용으로 바라클라바, 트루퍼햇 같은것도 챙겨가면 좋을거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5. 레깅스 내복 사실 상의는 땀이 많이나서 슬림다운 패딩, 솜패딩이나 플리스자켓+바막류로 충분하단 생각이지만 군데군데 바람부는곳엔 하의는 고어 종류 아니면 바람이 꽤 들어오더라고요. 일반적인 바지엔 레깅스 내복을 한겹더 입어주면 칼바람에 훨씬 방어가 잘될거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6. 자켓은 구스, 덕다운 보단 프리마로프트 같은 인공소재 앞서 여러번 언급했듯이 오르다보면 땀이나서 가벼운 패딩만으로도 춥다는 생각도 안들고 나쁘진않았지만 문제는 설산이라도 땀범벅에 위생상 한번의 등산에도 죄다 세탁해줘야겠더라고요. 정비가 문젠데 다운류는 세탁과 건조 모두 손이 많이가고 시간도 오래걸립니다. 해서 당일치기 등산은 프리마로프트같은 인공보온소재가 훨씬 충분하고 실용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7. 자가용은 놔두고 올라갔던 곳과 다른 코스로 내려오기 저는 자가용을 타고가서 올랐던 코스로 내려와야 했지만 관음사 <<--->> 성판악 , 어리목 <<--->>> 돈내코 와 같이 올랐던 코스와 다른 코스로 내려오는 재미가 상당할거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미리 버스나 대중교통편은 알아봐나야겠지요?)
겨울철 한라산같은 설산 등반을 여러번 하신분들의 경우 노하우가 많으시겠지만 저처럼 평소 겨울철 등산은 담쌓고 지내거나 무대포로 설산 등산해봐야지 하는분들에겐 참고하시면 좋을거 같단 생각에 적어봤습니다. 핵심만 적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허접하고 긴글인데 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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