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 무박 한계령-귀때기청봉-1904봉-대승령-안산갈림길-12선녀탕-남교리.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힘든 산행.. 사진 …
다시금 본격적으로 안내산악회를 통한 산행을 재개한 후 이번 주는 어디로 갈까 산행지를 고르는 재미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거림-세석-천왕봉-중산리 산행이 원픽이었으나, 모객저조로 취소. 크게 고민없이 설악산 서북능선을 가기로 했습니다. 안내산악회에서 5개 코스를 기획했는데, 역시 고민없이 E코스인 한계령-귀때기청봉-대승령-남교리를 마음먹었더랬죠.
귀때기청봉쪽 서북능선은 제가 좋아하는 산타는xx이님(보고 싶다. 거북아)의 애정 코스로 알고 있어서 왠지 정이 가는 코스, 안가봤지만 가본 듯한 친숙함이 있는 코스입니다. 산악회에서 제공한 지도를 보니 도상 17.6km 밖에(?) 안된 것도 제가 안심하고 선택한 이유입니다. (산행후에 트랭글에는 19.19km 찍혔습니다.) 산행 시간으로 14시간 30분이란 역대급(?) 시간을 주다니.. 이건 완전 혜자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당에서 11시 30분에 출발, 03시 15분 쯤 간이휴게소에 도착, 화장실시간만 10분 얻고 차안에서 좀 쉬다가 첫번째 들머리인 한계령에 입산시간인 04시에 맞춰서 가기로 했는데.. 화장실이 식당, 매점 내부에 있어서 닫혀있네요.(상당히 야무진 인상의 여자대장님이셨는데 휴게소 초이스는 아쉽..) 한계령에 저 포함 대 여섯 분이 내리고 다음 들머리인 오색으로 출발.. 칡흑같은 한계령주차장에는 친목산악회 버스 한대만이.. 폐부를 파고드는 얼음장같은 공기가 너무 좋네요. 제가 무박 산행을 하는 이유 중에 하나..
20 여 분간 기다리니 04시 정각에 알람장치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자동으로 열린다는 철문이 열리고.. 10 여 명이 랜턴을 밝히고 말없이 어둠속으로 사라집니다. 저는 앞서 가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 편인데 맘같지 않게 발을 들어올리는게 너무 힘드네요. ㅎㅎ 세컨드윈드가 온다는 30분이 된 것도 아닌 고작 5분 정도 걸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이때부터 가다 서다를 반복. 대부분의 산객들이 저를 앞서 가고.. 04시 20분 경부터 차갑고 어두운 설악에 혼자 남겨집니다. 그 후 제가 산객을 만난 건 다음 날 13시가 다 돼서 입니다. 이 길이 왜 그리 사람이 없는 건지..어제, 오늘 이곳 저곳에서 후기를 보고 이유를 짐작하게 됐습니다.
한계령삼거리 거의 다 와서 계단입니다..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거 같고.. 내 이름부르는 거 같고.. 혼자서 컴컴한 산은 너무 무섭습니다..
아이젠은 어지간한 내리막이 길게 이어지지 않는 한, 잘 안착용하는데.. 상당한 경사의 내리막이 온 통 눈, 얼음이라 일찌감치 착용했습니다.
드디어 한계령 삼거리 도착.. 05시 27분. 여러 후기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던데요.. 힘들었던 거에 비해서는 선방한 거 같습니다.
아.. 개무섭네요. 헐벗은 나무들이 빼곡하고 눈이 많이 싸인 능선길을 지나는데.. 혼자 야등을 거의 안 한 제겐 공포입니다.. 그런데 랜텐빛에 반사되는 안내길잡이대롱이 은근 공포감을 줄여 줍니다. 수 백미터 멀리 있는 대롱도 반짝거리는게 저거 없으면 어쩔 뻔 했을지.. 동트기 전까지 위안이 많이 됐습니다.
그 유명한 너덜길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확 트인 곳이다 보니 공포감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눈이 많이 싸여 있었는데, 돌들 틈을 메우고 있는 눈이 다져진 눈이 아니라 밟으면 푹 꺼져서 제법 위험하더군요. 틈사이로 발이 쑥 빠져서 정강이가 까지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ㅜㅜ 그 다음부터 조심조심하느라, 평속은 계속 떨어져 갔지만. 한발 한발 조심히 내디디며 가다 보니 체력적으로는 크게 힘들지 않게 지났습니다. 막대기를 쫓아 한참을 올라가면 됩니다..
진행 방향 오른쪽이 대청봉인데 빨간 불이 중청대피소겠죠? 밑에 두 불 빛은 산객의 랜턴빛인가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푸르스름한 여명이 올때 쯤 귀때기청봉에 도착..06시 44분.
산행 내내 제 왼쪽을 바라보던 멋진 두개의 봉.. dreamsong님이 이름을 알려주신 가리봉, 주걱봉..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더군요.
걸어온 귀때기청봉, 그 뒤로 대청봉인가요? 귀때기 내려올 때 경사는 어마무시했습니다.. 그런 경사가 1409봉 까지 심심치 않게 출몰하는게 서북능선의 묘미인 것 같습니다.
07시 33분 안전쉼터에서 아침을 먹습니다.
귀때기청봉 너머로 햇님이.. 일출을 보자는 생각이 아예 없어서 그냥 저냥했습니다..
가리봉, 주걱봉.. 뒤로 멋진 산자락들이 펼져지나 본데 운무가 심해서 저 이상 허락하지 않습니다... 아쉽습니다.
큰감투봉인지? 1408봉인지.. 저를 막고 있습니다. 이때 쯤 너무 힘들어서 오르막이 무섭습니다.
다시 귀때기청봉. 자꾸 뒤돌아 보게 만드는 마성이 있나봐요는 아니고 계단올라와서 숨내쉬고 여기서 돌아가야 하나? 심정에.
눈구경 원없이 합니다. 적설량도 많았고.. 여기가 눈이 잘 안녹고. 북사면이 대부분이고 등등 여러 이유가 있나 봅니다.
1408봉.. 여기야 싶으면 다시 계단, 계단 위에 계단, 계단, 암름, 계단, 암릉.. 진 다 빠지게 하네요. 스릴있습니다. 60도는 돼 보이는 내리막 경사 수시 출몰, 좁고 울퉁불퉁, 꼬불꼬불 길이 오르막 내리막 이어 집니다.
1408봉.. 근처 전부와 360도 전방향으로 조망맛집입니다.. 가까워진 가리봉, 주걱봉.. 비탐이라는데 후기가 넘치더군요. 개 늠들.
산행 시작 5시간이 넘게 지났는데, 평속 1.2에 진행거리 겨우 7km 정도.. 나는 제 시간에 안내산악회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혼산좋아라 하지만, 밤에 홀로 대중교통 타고 집에 가는 길은.. 생각만으로도 너무 우울할 거 같습니다. 좋은 분들의 조언을 듣고 기운을 내봅니다. 예의 톱니같은 능선이 이어지는데요.. 발자욱이 잘 나있지만, 잠깐 한눈 팔다 다른 곳 밟으면,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이라 체력소모가 좀 있습니다.. 폭도 좁아서 오른쪽 스틱에 힘줘서 치고 나가다간 까딱하면 구르기 딱 십상입니다.
대승령 거의 다와서 눈쌓인 계단.. 대둔산 삼선계단을 내려가는 건가요? 사량도 지리망산인가요? 여기서 10분 간 떨리는 마음을 다 잡았네요.
산행 시작 7시간 30분 만에 대승령 안착.. 봉이나 재가 아닌 령(고개)로 부르는 이유가 솔직히 납득은 가지 않지만.. 좀 다르기는 다른 거 같습니다.
조인영이란 분이 살던 시대에 설악산을 어떻게 오를 생각을 했을지.. 상상이 안갑니다.
퍼질러 앉아 이것 저것 흡입합니다. 혼산은 먹을거리 제대로 챙겨가야 합니다.. 먹은 만큼 간다는 명언을 실감했습니다. 원기회복이 됨을 느끼고 남교리로 내려가기로 결정.
대승령에서 보이던 저 봉우리도 올라야 하는 건 아닐꺼야란 기대는 금방 아작났고요. 힘들게 오른 안산갈림길. 역시 비탐인데 금줄넘어 발자국이.. 좀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았으면.. 오다보니 박지로 사용했음이 분명한 흔적도 있고요.. 사람들 진짜 왜 이러지.
남긴지 오래돼 보이는 발자국을 따라 꽃길을 상상하며 걸음을 채족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너무 힘들어서 좀비처럼 내려왔네요. 사진도 별로 없습니다.
남교리까지..얼마나 지루하고 힘들던지.. 화대종주의 유평 하산, 한라산 성판악 하산길, 공룡 비선대 소공원 하산보다 훨씬 욕나오는 제가 경험한 가장 힘들고 지루하기로 세손가락안에 충분히 드는.. 정말 다시 가라면 절대 가지 않을 길입니다.
복숭아탕, 12선녀탕.. 철봉 잡고 내려가지 않으면 상당히 위험한 경사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참 아이젠은 귀때기청봉 전에 한번 벗었다가, 귀때기 내려가기 전 착용하고, 남교리 거의 끝까지 벗지 않았네요. 벗었다 차기를 반복했다면 스무 번도 넘게 해야 했지만.. 텀도 짧고 애매합니다. 그냥 주구장창 차고 다녔습니다. 그 와중에 얼음 색깔은 참 이쁩니다.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남교리지원센터로 하산. 기나긴 여정을 마쳤습니다 산행시작 12시간 여 만인 16시 10분에 완전 하산에 성공. 저와 같이 한계령에서 내린 분들은 다들 어디 가셨나 했는데 대청봉으로 가셨나 봅니다. 희안하게 다들 개별 상경하셨다네요.
사전 정보없이 무턱대고 간 한계령-남교리 산행은 거리에 비해 엄청나게 힘든 산행이었지만, 조망이 너무 좋았습니다. 상고대, 눈꽃은 없었지만 등로에 쌓인 엄청난 눈을 밟는 걸로 아쉬울 게 없었구요. 다이내믹하고 와일드한 등로는 최고(?) 였습니다. 시간을 두고 여유있게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듭니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 다시 찾습니다. 안내산악회 예약했구요. 이번에는 이갈리는 남교리까지 안가고 장수대로 내려가서 개별 상경해야 겠습니다. 어쩌면 산방 시작전인 다음 주에도 갈 거 같습니다. 귀때기청봉과 주변 능선에 제대로 꽂혔습니다. ㅋㅋ 여기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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