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을 오르는 불굴의 도전 ‘고산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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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을 오르는 불굴의 도전 ‘고산등반’

[스포츠 속 과학] 알파인 스타일 무산소 등정이 각광


동상으로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리 힘으로 산을 올랐다. 히말라야의 8천m 이상 고봉 14좌 중 마지막 남은 ‘브로드피크’(8,047m) 정상에 오른 게 지난 해 7월 17일 오후.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 하산 중 크레바스(Crevasse) 틈새에 빠져 조난당했다. 러시아 등반대가 그를 발견했으나 구조과정에서 다시 추락하며 히말라야의 영원한 별이 됐다.


불굴의 산악인 김홍빈 대장에 대한 수색활동을 중단하면서 끝내 영면에 들어갔다.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8,849m) 정상에 오른 후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는 무선을 타전했던 고상돈 대장, 한국인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던 지현옥 대장,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14좌 완등에 도전했던 고미영 대장, 하늘이 허락한다는 한국인 14좌 완등자 7명 중에서도 박영석 대장과 김창호 대장에 이어 김홍빈 대장까지 수많은 등반가들이 산에서 목숨을 잃었다.


심장이 터질 듯 숨이 가빠지는 이유


고산등반이란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는 해발고도 3,000m 이상의 등반을 가리킨다. 등산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즐겨하는 생활체육 중 하나이지만, 높은 산을 오르는 고산등반은 여가 및 레크리에이션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인 등산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다. 고산등반을 위해서는 특수한 장비가 필요하고, 강한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극한환경에의 적응능력 등 요구조건이 많으며,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과 극복이 필요한 극한의 모험스포츠이다.


최근에는 경제적인 여유가 늘어나고 교통통신과 등산장비가 발달하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3,000m 이상 높은 산에 오르는 고산 트래킹이 늘어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구분하면 히말라야를 기준으로 할 경우 고도 5,000m대에 위치한 베이스캠프까지의 여정이 트래킹(Tracking)이고, 베이스캠프까지 필요한 물자를 옮기는 과정을 카라반(Caravan)이라 하며, 베이스캠프를 기점으로 더 높은 목적지로 오르면 고산등반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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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캠프에서 브르도피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김홍빈 대장. ⓒ 김홍빈 대장 페이스북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산맥이나 유럽의 지붕 알프스산맥 등에 위치한 높은 산들의 공통점은 일단 꼭대기가 하얗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도 꼭대기가 하얗게 빛나는데, 산 이름 자체가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 하얀 산’이라는 의미다. 높은 산들 꼭대기가 하얀 이유는 사시사철 만년설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해발고도가 1km를 오를 때마다 온도는 대략 6.5℃씩 떨어져 적도 부근에 위치한 킬리만자로도 정상 평균온도는 영하 7℃에 불과하다.


따라서 고산등반은 필연적으로 눈과 얼음에 뒤덮인 산을 오르는 일을 포함한다.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가파른 암벽은 물론 유리처럼 매끄러운 빙벽,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설벽을 기어올라야 한다는 얘기. 정상에 다다를수록 매서운 강추위가 엄습하며, 초고속의 강풍과 눈보라를 견뎌야 하고 예측 불가능한 눈사태에도 맞서야 한다. 해발 4,000m 이상에서는 자외선 강도가 지상의 3배 이상이기 때문에 잠시라도 고글을 벗으면 설원에 반사된 빛으로 각막에 화상을 입는 설맹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물론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산소의 부족이다. 해수면의 대기압은 1기압으로 1013hPa(헥토파스칼)인데, 해발고도가 8m씩 높아질 때마다 1hPa씩 떨어진다. 대기압은 해발 5,000m에서 거의 절반, 해발 8,000m에서는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진다. 대기압이 떨어지면서 산소농도도 똑같이 낮아지기 때문에 몸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심장 박동은 빨라지고 호흡은 가빠지게 된다. 이 때문에 단 몇 발자국만 걸어도 전력질주를 하고 난 후처럼 가슴이 터질 것 갖고 숨이 막히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지구성 체력에 고도의 집중력 필요


고산등반 초기에는 예전 극지를 탐험할 때 사용하던 ‘극지법(極地法)’을 주로 사용했다.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뒤 순차적으로 근거지를 만들어가며 전진하는 방식이다. 동료대원들이 힘들게 루트를 개척하고 고정 로프를 설치하면, 그 로프를 붙잡고 짐과 식량을 올려 다음 캠프를 설치한다. 꼭대기까지 최대한 근접해 캠프를 설치한 후 그동안 힘을 아껴두었던 공격조가 정상을 도전한다.


1953년 극지법을 통해 영국 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가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극지법을 통해 히말라야의 여러 고봉들이 차례로 정복됐다. 하지만 극지법 등반에는 엄청난 자본과 수십 명의 인력이 동원되며, 일각에서는 정상에 오른 후 각종 로프와 온갖 쓰레기를 남겨두고 내려오기 때문에 산을 망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최근 산악계에서는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는 ‘알파인 스타일(Alpine Style) 등반’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알파인 스타일은 식량, 침낭, 장비를 최소한으로 꾸려서 자신이 직접 짊어지고 올라가 짧은 시간 안에 정상을 공략하고 내려오는 방식이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이탈리아의 산악인 라인홀드 메스너가 전설인 이유는 14좌 모두 알파인 스타일로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1980년 메스너의 에베레스트 무산소 단독 등반은 지난 50년간 인류의 최고 모험으로 꼽히기도 했다.


국제산악연맹(UIAA)은 알파일 스타일 등정으로 ‘셰르파 등 도우미를 두지 않는다’, ‘사전 정찰을 하지 않는다’, ‘고정 로프를 설치하지 않는다’, ‘로프는 2동 이내로 제한한다’, ‘산소 기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팀원은 6명을 넘지 않는다’ 등 6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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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이탈리아의 산악인 라인홀드 메스너. ⓒ 국제산악연맹(UIAA)


고산등반은 지구의 중력에 대항해 점차 고도를 높여 정상에 오르고 다시 내려와야 하는 공간이동 운동이다. 하루 종일 빙벽에 매달려 기어 올라가기도 하고, 칼날처럼 파고드는 추위와 강풍 속에서 텐트 없이 침낭만 뒤집어쓰고 밤을 세는 ‘비바크(Biwak)’를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험한 코스에서 수직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지에 적응하는 생리적 능력과 에너지균형을 바탕으로 하는 지구성 체력을 필요로 한다.


빙벽등반과 암벽등반과 같은 등반기술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빙벽을 오르거나 빙하를 건널 때는 언제든지 미끄러져 추락하고 틈새인 크레바스에 빠져 생사가 왔다 갔다 할 수 있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과 함께 담력이 필요하다.


고산등반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장비는 ‘피켈(Pickel)’이다. 앞뒤로 곡괭이와 도끼가 붙어있고 아래로는 꼬챙이가 결합돼 있는 T자 모양의 등정 기구다. 오랫동안 사용되면서 산악인의 상징과도 같은 장비인데, 빙벽을 오르고 크레바스를 탐침하고 미끄러질 때 제동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한다. 자일이라고도 부르는 ‘로프(Rope)’는 등반이나 하강시 필수적인 생명줄인데 가볍고 튼튼한 나일론으로 된 제품을 사용한다. 가파른 빙벽을 오를 때는 갈고리 모양의 ‘아이스 바일(Ice Beil)’을 사용한다. ‘크램폰(Crampon)’은 흔히 아이젠이라 불리는데, 벽이나 빙판, 눈이 쌓인 곳을 걸을 때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신발에 끼우는 스파이크다.


인종과 나이, 체력과 무관한 고산병


3000m 이상의 높은 산에 오르면 고도 증가에 따라 고소 증세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고산병(Acute Mountain Sickness)’을 경험하게 된다. 고산병은 인종과 나이, 체력에 무관하게 발생한다.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한 신체 건강한 젊은이라고 해서 체력이 약한 노인이나 여성보다 안전하지 않다.


고산병 초기에는 두통, 식욕감퇴, 피로와 무력감, 현기증과 어지러움, 기침, 불면증, 기억력 감퇴, 구토, 걸음걸이의 평형감 실조, 말초기관 부종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안면창백, 심계항진, 호흡곤란 등을 일으킨다. 최악의 경우 폐부종에 의해 사망까지 할 수 있다.


고산병이 나타나는 이유는 고도 상승에 따른 대기압의 저하에 의한 저산소증에 의해서 비롯된다. 산소 밀도 감소로 호흡수가 증가하면서 이산화탄소가 과다하게 방출돼 혈액 pH가 증가해 저탄산혈증이 발생한다. 저산소증에 인해 폐동맥과 폐정맥의 수축이 일어나 모세혈관에서 액체가 빠져나와 폐 조직에 고여 폐부종이 발생하고, 폐 조직의 산소교환은 더욱 어려워져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뇌에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 뇌부종이 발생하는데, 사고가 흐려지고 때로는 마비되거나 혼수상태가 된다. 전문가들은 고소 증세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걷고 물은 수시로 많이 마시며 하루에 1000m 이상 고도를 높이지 않는 고소 적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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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SNS를 통해 공개된 후 여러 사람들에게서 회자되었던 에베레스트 정상 모습. 정상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몰려 심각한 정체를 빚고 있다. ⓒ 니르말 푸르자 페이스북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네팔 관광청에 따르면 6,000m 이상 고산등반을 위해 입산허가 신청을 낸 사람이 2019년 한해 8,202명에 달했다. 히말라야 14좌 중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가 특히 인기가 높은데, 2019년 정상에 오른 사람만 사상 최대인 885명을 기록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1인당 1억 원에 가까운 비용을 받고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데려다주는 상업 등반대가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은 날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정체까지 빚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일은 더 이상 도전이 아니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받아야 했다.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말로리는 1921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실패한 후 두번째 도전을 준비했다. 왜 다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는 이유를 묻자 그는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라는 명언을 남겼다. 말로리는 1924년 에베레스트 등정 중 실종됐는데 75년이 지난 1999년 시신이 발견됐다. 에베레스트가 쌓아온 전설과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등정 인원 제한 등 조치가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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