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에서 제일 후회되는거 2가지가
1. 몇년간 게임한거. 진짜 남은거 하나없는 ㅂㅅ짓...
2. 쓰레기들 공놀이를 몇년간 시즌권까지 끊어가며 다닌것
이게 거의 매일하는거라 인생에 데미지가 있습니다. 저것들 끊고 쫌? 잘살게 營윱求
저딴걸 왜 봤는지 아직도 생각하면 진짜 시간 드럽게 아까움
낚시원투
2022.02.08 02:00
전 술마시러 다녔네요.
잠실 야채곱창 맛나서
베이비수
2022.02.08 02:00
저는 롯데 로이스터 감독 떠나고 야구 끊었습니다.
칠복이주인
2022.02.08 02:00
뭐 상 ㄷ ㅈ.같은것들도 정치하고 판새하고 다하는데요
뭘...
모아모아12…
2022.02.08 02:00
지들이 능력 있어서 연봉이 높은줄 아는 놈들.
팬 없으면 그정도 연봉이 안나오는데.
배운거 없이 도덕성은 바닥이여서 원정 지역마다 여자친구 만들고 다닌다죠.
티아구실바
2022.02.08 02:00
지역감정으로 성장한 혐오 스포츠 영원히 보이콧
솔방울이이이…
2022.02.08 02:00
아무리 그래도 잘만보던데요. 머ㅎㅎㅎ
정치인들이 국민 개돼지취급해도 지지하는데 야구정도야ㅎㅎ
soonan…
2022.02.08 02:00
그러니깐요 저렇게 해도 볼사람은 다 보더라고요
Arigat…
2022.02.08 02:00
최순시리 당해놓고 또 뽑는거보고
그냥 개돼지 인정
che46
2022.02.08 02:00
어린이에게까지 투명인간, 거지 치급하는 종목은 프로스포츠 자격이 없어요. 평생 야구팬이였지만 야구가 싫어지게 만드는 행동들이네요. 진심 프로야구 망하기를 바랍니다.
앙칼진남자
2022.02.08 02:00
초딩때부터 교실은 안들어가고 배운게 없어서 지네 연봉이 어떻게 나오는지 구조를 몰라서 저지랄들 하는거임...김선빈 영상이 최고봉인데 빠져서 아쉽구만
그놈참말많네
2022.02.08 02:00
어우 씹새들
vistap…
2022.02.08 02:00
아직 K야구보는 개돼지가 있나요? ㅋㅋ
어흐흑
2022.02.08 02:00
안보면 그만.
띠슈띠슈
2022.02.08 02:00
언제 망하냐 조크보
막걸리포레버
2022.02.08 02:00
으익ㅋㅋㅋ
발라_모굴리…
2022.02.08 02:00
진짜 이짤은 올타임 개빡치네요
웨더마스터!…
2022.02.08 02:00
이래도 볼꺼냐 이거죠 ㅋㅋㅋ
낚시원투
2022.02.08 02:00
쳐 지고 있는데 남일
번개발
2022.02.08 02:00
웃긴게 얘는 팬서비스는 A급이란거...
DD치느님
2022.02.08 02:00
저는 개인적으로 이해가 안가는게, 프로야구는 전두환이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가 아닌 다른곳으로 돌리기 위한 3S정책중 하나 입니다. 전두환에 원한이 많은 광주사람들이 타이거즈에 열광하는건 겡장히 모순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오리도날수있…
2022.02.08 02:00
<1970년대는 '박정희의 시대'였고 또 '프로복싱의 시대'였다. 박정희 대통령(오른쪽)이 유제두에게 표창을 주고 있다.>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550&aid=0000000025
1982년과 83년 잇달아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전두환정권의 우민정책인 이른바 '3S(스포츠,스크린,섹스)'에 의해서 관 주도형으로 출범하기 이전까지 프로복싱은 1970년대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프로'스포츠'였다
이건 이전부터 꾸준히 알려진 사실인데 아직도 엉뚱하게 아는 분들이 있네요.
3S정책이 단지 야구만 이야기 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전두환만 그런 것도 아니고요.
박정희때는 프로복싱, 그리고 전드환때는 야구 축구가 관주도형으로 프로로 출범한겁니다.
단 야구가 지역에 정착하면서 좀더 인기를 얻은 겁니다.
님 주장대로라면 광주는 야구, 축구도 싫어해야 하고 부산이나 마산은 프로복싱 싫어해야 합니다.
모순이 있다면 이런 사실도 모르고 모순 타령하는 님 글입니다.
상무부황제
2022.02.08 02:00
이분을 너무 나무라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다들 현대사에 대해 알고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이 알려져있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그 역사를 지속적으로 가리고 비틀려고 해왔기때문에 잠시라도 관심에서 멀어지면 언제든 그 역사는 지워져버릴지 모릅니다.
일본이 전범의 역사를 지우려고 하는것 처럼요.
외람되지만 DD치느님께서도 저시대의 전후관계에 아직 생경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비난이라기보다는 호기심이라고 저는 받아들여 주제넘지만 몇자 댓글을 달게됐습니다.
굳이 제가 사족을 다는 것보다 아래에 발췌해드린 기사 몇줄을 읽어보시는게 나을것이고,
시간이 되신다면 이 기사보다도 저 다큐를 한번 시청해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제 짧은 생각에는 DD치느님께서 궁금하신점을 저 다큐 한편이 모자란대로 답을 해드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져 준 슬프지만 찬란했던 해태 타이거즈 19년의 기록
■ 리그에서 가장 가난했던 '호남' 대표 구단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의 제5공화국이 출범한 이듬해 각 지역을 연고로 프로야구가 시작됐다. 마지막까지 후원하겠다는 대기업이 없었던 호남. 결국 제과 업체가 맡아 해태 타이거즈를 창단했다. 창단 멤버는 고작 15명. 타자로 입단한 김성한은 프로야구 첫해 선발투수와 타자 투 잡을 뛰며 10승, 3할에 타점왕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가장 소외된 지역을 연고로, 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팀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가난은 해태 타이거즈의 대표 정신이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일당백’, ‘헝그리 정신’으로 중무장한 해태 타이거즈는 프로야구사에 무서운 돌풍을 일으켰다.
■ 가장 약한 자들의 영웅
1983년 김응용 감독이 부임한 첫해, 해태 타이거즈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국시리즈에서 첫 우승을 거머쥔다. 기적 같은 우승 이후 해태 타이거즈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지금도 깨지지 않는 전설적인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 ‘해태 왕조 시대’를 열었다. 편견과 차별에 맞서 살아야 했던 광주 사람들에게 야구는 야구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야구장은 유일한 분출구였다. 그래서였을까. 창단 이후 무려 18년 동안 해태 타이거즈는 5월 18일에 광주에서 경기를 치를 수 없었다. 그날만큼은 선수들도 지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경기에 임했다고. 해태 타이거즈가 승리하면 울려 퍼졌던 <목포의 눈물>. 광주 사람들은 가장 기쁘고 행복한 순간 가장 슬픈 응원가를 불렀다. 마치 이 노래가 그들의 한을 달래주는 씻김굿이라도 되는 듯 말이다.
(....중략)
부산일보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email protected]
의 기사입니다.
방송 다시보기 링크
https://vod.kbs.co.kr/m/index.html?source=smr&sname=vod&stype=vod&contents_id=K01_PS-2019193742-01-000_SC00&program_code=T2019-0296&program_id=PS-2019193742-01-000§ion_code=05&broadcast_complete_yn=N#refresh
풀버전을 못찾아서 아쉽네요. 위 링크는 비디오클립이 토막나있는데다 전편이 다 있지는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