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신진서·커제 10번기 ‘끝장 대국’ 성사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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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신진서·커제 10번기 ‘끝장 대국’ 성사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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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79795241839.jpg 신진서(左), 커제(右)
신진서와 커제의 ‘10번기’는 성사될까. 10번기는 치킨게임과 비슷해서 패한 쪽에 돌이키기 힘든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어떤 격정이 사태를 이렇게 몰고 왔다. 두 사람 모두 좋다고 했으므로 10번기는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시점의 10번기가 과연 옳은 일일까.

신진서 9단은 상대 전적에서 커제 9단에게 7승11패로 밀리지만 최근 성적은 4승1패로 앞선다. 신구 왕좌가 바뀔 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특히 두 사람 사이의 마지막 대국인 농심배 최종국에서 신진서가 완승을 거두며 저울추는 크게 기울었다. 감정이 풍부한 커제는 자신이 ‘지는 해’가 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다.

커제는 바둑을 잘 둬 한동안 세상에 적수가 없다시피 했고 도발적인 화법으로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런 커제가 농심배 직후 중국 유튜브라 할 빌리빌리(bilibili)에서 토해 낸 말이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이 정도 실력이면 이 세상에 신진서를 대적할 기사는 없다. 신진서는 코로나 이후 중국 기사에게 23연승을 거뒀는데 이런 바둑을 본 적이 없다. 너무 힘들다. 내가 어떻게 졌는지도 모르겠다. 신진서는 인간일까. AI 일치율 71%를 보이다니! 반상을 장악하는 힘이 알파고보다 더 강하다는 느낌, 온전히 바둑을 둘 수 없었다.”

“나의 노림수는 후반에 상대방의 실수를 기다리는 것인데 기다리다 죽을 뻔했다.”

커제의 격정과 흥분, 속마음이 그대로 전해온다. 신진서와의 대국을 한수 한수 복기하며 그는 놀라움과 절망적인 소회를 그대로 토로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제의 화장실 발언이 등장한다.

“지인의 전언에 따르면 신진서는 나의 77번째 수를 본 뒤 착점하지 않고 화장실에 갔다. 상대가 두기 전에 다녀와야 한다는 규칙을 어겼다.”

커제가 ‘지인의 전언’이란 방패 아래 AI 치팅 가능성에 대한 뉘앙스를 풍긴 것이다. 그러나 이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금방 드러났다. TV 중계 영상을 확인해보니 신진서는 백76을 둔 뒤 자리를 떴고 커제가 77을 두고 나서 54초 후 자리에 돌아왔다. 그리고 5분 42초 뒤 78을 착점했다.

온라인은 들끓었다. 처음 중국 네티즌들은 커제의 편을 들었으나 점차 뜨악해졌다. 중국의 후야오위 9단은 신진서의 AI 일치율이 커제가 말한 71%가 아니라 65.8%였다고 밝혔다. 또 신진서가 36수까지 불과 33초를 소비했다면서 “신진서는 이 대국의 초반 변화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커제는 자신이 사실관계를 잘못 안 점, 그리고 그에 근거하며 의혹을 제기한 점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일주일쯤 뒤 “당분간 바둑 둘 일 없고 학교로 돌아가 공부와 게임을 즐기겠다”고 말했다. (커제는 중국의 명문 칭화대학에 다닌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 빌리빌리 생방송에서 “신진서와의 10번기 기회가 생기면 틀림없이 둘 것이다. 패하면 상금을 하나도 못 받는 방식으로 두자. 판 크게 두자”고 새로운 제안을 하고 나섰다.

커제는 못 말리는 사람이다. 천재적이고 자유분방한 그는 인기가 높아 연예프로에 고정출연하기도 했다. 신진서는 커제의 도발이 불러온 일련의 사태에 대해 참으로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신진서는 10번기에 대해서도 “프로기사로서 승부를 회피할 수 없다. 다만 제 개인의 욕심보다는 바둑을 널리 알리는 이슈를 만들기 위해 수락할 것 같다”고 말한다.

신진서의 나이는 이제 겨우 22세다. 커제는 이세돌 시대부터 활약해 한참 된 것 같지만 그 역시 겨우 25세. 적어도 10번기 같은 과격한 방식으로 끝장을 봐야 할 나이는 아니다. 동갑내기 이세돌-구리 10번기는 서른이 넘어 열렸다. 신진서-커제도 최소한 5년간은 근사한 바둑스토리를 더 쓰다가 10번기를 두어도 늦지 않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기사제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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