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퀀트 투자자인 짐 사이먼스와 그의 회사인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에 관한 책 “시장을 풀어낸 수학자”를 읽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짐 사이먼스를 포함, 일단의 수학자들이 다양한 인연으로 뭉치고 흩어지며 퀀트 트레이딩의 금자탑을 이뤄내는 이야기가 책의 주된 내용인데, 메달리온 펀드의 성공에 관한 내용이 눈길을 끕니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내부펀드인 메달리온 펀드가 세간에 첫 주목을 이끌어낸 1994년의 성과는 대단했습니다. 메달리온 펀드는 그 때까지 퀀트 트레이딩에 대해 대중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시선을 깨트리고, 94년 한 해에만 무려 71%의 수익률을 달성합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성과였냐면, 1994년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채권과 주식시장 양쪽에서 패닉과 폭락이 이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공매도 펀드도 아닌데, 71%라는 수익률을 달성했던 겁니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는 그런 대대적인 성과를 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는 왜 이렇게 시장을 이기게 되었는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분석을 했고, 결국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알고리즘이 뛰어나서가 아닌 경쟁자들이 무능하고 잘못된 오류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됩니다.
1. 시장을 빈번하게 예측만 하려는 헤지펀드들
2. 시장예측에 지나친 자신감과 과도한 트레이딩으로 악명높은 다른 트레이더들
3. 시장의 효율성을 맹종하는 강단출신 경제학자들
4. 인지편향에 빠지기 쉬워 패닉과 거품에 과잉반응하는 일반 투자자들
이런 일단의 부류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시장의 비효율과 광기를 끌어내줬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돈을 뺏어올 수 있었던 것이 경이적인 수익의 원인이라는 게 그들의 분석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실패자들이 양산해온 실패를 디딤돌 삼아 언제까지고 냉정한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통해 꾸준한 알파를 만들 수 있는가가 다음 관건일텐데 당장 다음 해부터 이러한 알파를 유지하는데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일단 펀드가 유명해지자 투자자로부터 많은 돈이 들어오고, 그만큼 많은 돈을 굴려야 하다보니 매매횟수가 이전보다 훨씬 많아지고, 그만큼 고점 매수, 저점매도를 강요당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수익률이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메달리온 펀드의 매매정보를 훔쳐서 그대로 따라하거나 악용하는 트레이더들이나 추종펀드들이 늘면서 이전까지 잘 작동하던 알고리즘이 형편없는 결과를 내게 됩니다.
결국, 메달리온 펀드는 투자자를 받지 않고 규모를 축소시켰으며, 점점 비밀주의 경향을 보이게 되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들의 알고리즘이나 매매 시스템에 관한 정보가 누출되지 못하도록 막는건 불가능해서 이전같은 전략으로는 더이상 수익률을 내는게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시장에서 알파를 내기 위한 전제조건은
1. 시장이 나의 포지션을 알 수 없어야 한다
2. 시장 내에서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하게 움직이는 참여자들 편견과 쏠림을 공략해야 한다.
이 두가지가 충족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이 두가지 전제를 충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는 수익은 알파가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고 베팅했다 운이 좋아 우연히 나온 초과수익, 즉 변동성에서 기인한 베타라고 봐야겠죠. 그러고 보면, 처음에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며 인기를 구가하던 펀드들이 수익률을 유지하기 위해 더이상의 투자를 받지 않는게 아니라, 오히려 계속해서 더 많은 투자자를 유치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런 식으로 투자자와 자금을 무제한으로 유치하면서도 수익률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지가 되는 펀드라는 게 존재할까요?
확률적으로야 드물지만, 그런 펀드가 분명 존재할 수는 있을겁니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건, 그런 식으로 자본금이 계속 늘어나거나 추종펀드나 모방 트레이더들을 그대로 방치하면서도 유지되는 수익률은 알파가 아닌 베타에서 나오는 수익이라고 봐야 할겁니다. 알파가 아닌 베타 수익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펀드일수록, 시장의 성격이 갑자기 변하면 그만큼 늘어난 변동성에 비례해 손실이 기적적으로 극대화될수 밖에 없는 망쪼나는 펀드가 될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개인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내가 내고 있는 수익률의 크기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 투자전략이 시장의 위험과 변동성에 자기 계좌를 최대한 노출시키면서 수익을 내는 베타에 기반하고 있는지, 아니면 꾸준히 시장의 실패자들을 밟고 안정적인 수익을 내줄 수 있는 알파에 기반하고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아무런 원칙이나 철학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투자하고 있는건 아닌지를 점검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저부터도 점검해야 할 대목이 한두가지가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