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투자는 접어야겠습니다.
투자라는 건 말 그대로 돈을 던지는 행위, 많은 리스크를 지고 자기 돈을 던지는 행위입니다. 도전정신이나 스릴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확신과 준비를 마치고 돈을 투자하려고 하는게 당연한 거지요. 그러한 확신의 근거가 되는 판단은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가격 자체가 저평가되어있다는 판단일수도, 차트상 상승모멘텀이 있다는 판단일수도, 각자의 다양한 관점과 잣대로 가치판단을 하거나, 아예 모든 주관을 내려놓고 기계적인 알고리즘을 짜가며 퀀트 투자를 하거나,,,
2019년 봄부터 주식투자를 시작한 것 같은데, 처음에는 아무런 원칙없이 뉴스나 여러가지 자료, 글들을 보면서 주먹구구식으로 공부하며 “올라갈 것 같은 주식”을 사서 30%정도 상승하면 팔고는 했습니다. 저는 본업이 있기 때문에 장중에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집에서도 각종 뉴스나 이슈를 따라잡으려 많은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할 수 있는 투자전략이 제한되 있었습니다.
장중에 실시간으로 차트를 봐야만 하는 모멘텀투자나 단타, 스윙투자등은 애초에 제가 선택할 수 없는 투자였습니다. 여러 종목에 분산투자를 하는 것은 사업보고서를 봐야 하는 분량이 너무 많아 불가능했고, ETF도 제 상황과는 맞지 않는 투자였습니다. 영어로 된 재무제표나 뉴스를 상대해야 하는 미국주식도 마찬가지로 제 상황과 맞는 투자는 아니었구요.
그렇게 나 자신에게 적합한 투자방식이 뭘까를 고민하다 눈에 띈게 사경인 회계사의 재무제표강의였습니다. 그 강의를 시청하면서 회계사라는 나름 전문영역에 종사해온 사람이 특정 기업의 사업보고서와 재무제표를 가지고 어느정도까지 회사의 성장성과 위험요소들을 간파할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젼을 보여줬던게 정말 감명깊었죠.
그때부터 사업보고서와 재무제표를 좀 더 체계적으로, 그리고 더 깊고 꼼꼼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업보고서와 재무제표만 가지고 기업을 보면서 어려웠던 게 재무제표는 과거를 보여주는 데이터라는 점입니다. 지금까지는 장사를 잘 해왔는데,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환상적인 실적을 내줄수 있는 보장이라는 건 어디에도 없다는거지요.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의 사업보고서를 보면서 업황이 크게 개선되거나 꾸준히 성장을 계속해오며 투자가치를 보여줬던 기업들 중 저평가된 종목들 대부분은 특정 대기업의 하청기업이거나, 경기를 타는 기업들이 대다수였고, 이들은 하나같이 얼마 안가 실적이 무너지면서 투자기준에서 벗어나더라구요.
물론, 일부는 꾸준히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기업들도 있었지만, 실적성장을 위해 안정적인 사업형태를 포기하고 갑자기 부채를 끌어와서 판을 키우우며 공격적인 영업으로 돌변하는 등 여러 무리수를 동원하기도 해서(해당 기업은 지금도 주가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장기간 보유하지 못하고 처분하기도 했습니다.
사업보고서를 분기마다 들여다보고 검토하면서 하청기업이 아니면서 자신들의 브랜드파워를 키워가며 그 전까지 계속 효율적인 투자를 계속해온 덕에 꽃피기 시작했다 여겼던 기업은 여지껏 딱 한 종목밖에 보지 못했기에 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그에 걸맞게 가장 큰 비중으로 투자를 했는데 오늘 참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공시와 함께 거래정지가 되버리더군요. 네, 오스템임플란트가 그 종목입니다.
투자를 못하고 묶여있는 돈이나 시간, 혹여 이게 상폐가 되어서 100%에 가까운 손실을 입게 될지 모른다는건 사실 중요한게 아닙니다. 문제는 지난 1년반 가까운 시간동안 열심히 축적해왔던 공부를 통해 계속 돈을 벌 수 있겠다는 확신이 사라져버린 게 진짜 문제입니다. 계속 일관된 관점과 목표를 가지고 경험을 쌓아오던 게 길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손실을 만회하자고 익숙하지 않은 방식들을 이제와서 시도하는 건 오히려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금리가 올라가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확신이 없는 시도는 금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당분간은 푹 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게 좋겠다는 결론 말고는 낼 게 없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영원히 투자를 안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건 잘 압니다. 저도 나이가 있다보니 투자가 가능한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상태거든요. 하지만, 투자는 시작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시작을 크게 수익을 내며 자신의 생각이 적중했다는 쾌감과 자신감을 가진 채 출발해야 꾸준히 자신의 생각을 확장시키며 손쉽게 투자를 키워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좋은 때에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겠죠.
황현희씨가 최근 낸 책 “비겁한 돈”이 지금 제가 처한 상황에서 참 적절한 조언을 주는것 같습니다. 뭔가 내가 생각해왔던 게 잘 안되고 막혀있을 때 초조해서 성급한 결정을 내리면 그게 진짜 실패인 거겠죠. 그동안 공부해왔던 것들을 일기장마냥 끄적거리며 썼던 제 졸필을 봐주셨던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언젠가 오스템임플란트가 상폐가 되든 거래재개가 되든, 지난동안 투자가 수익이냐 손실이냐 여부에 상관없이 일단은 다 현금화 해서 우선은 아들 대학등록금에 보태야겠네요. 그리고 모처럼 저녁에 이런저런 공부 안하고 실컷 놀아야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다음에 투자를 다시 시작하더라도 지금처럼 사업보고서와 재무제표 중심으로만 판단하는 건 효율이 너무 좋지 않기에 제 상황에서 선택가능한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는게 좋을지는 지금부터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주제넘게 글을 쓰는것보다는 주로 올려주시는 좋은 글들을 읽고 소비하는 쪽으로 활동하게 될 것 갈습니다. 아주 게시판 떠나겠다는 것은 아니니 앞으로도 좋은 글 보면 추천드리고 댓글로도 인사드리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부디 성공투자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