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물렁한 연준과 도사린 ‘위험’ [김학균의 금융의 속살]
지난 11월10일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가 발표된 직후 바이든 대통령은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매월 발표되는 물가지표에 대해 대통령이 의견을 표명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물가상승률이 고공행진을 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매점매석을 하는 불공정 거래자들을 질타했고, 원유를 판매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의 담합을 비난했으며, 물가 안정을 위해 싸우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은 경제적 현상이지만, 정치적 파급 효과도 크다. 물가 상승은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떨어뜨려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경제학자인 아서 오쿤은 고통지수(misery index)라는 지표를 고안했는데, 고통지수는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의 합으로 계산된다. 실업은 돈을 벌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고통이고, 물가 상승은 가지고 있는 돈의 실질가치가 떨어지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조사기관마다 편차는 있지만 임기 1년차인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대체로 40%대 초중반까지 추락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민심 이반은 바이든의 지지율을 떨어뜨린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바이든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인플레이션이 정치적 변화를 불러온 사례들은 많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연임에 실패한 대통령은 4명뿐인데, 트럼프를 제외한 3명이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지 못해 선거에서 패했다.
1970년대 하이퍼 인플레이션 시기에 재선에 도전했던 제럴드 포드와 지미 카터가 선거에서 패했고, 1992년 선거에서는 조지 H W 부시가 클린턴에게 졌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임기 내내 물가가 불안한 것은 아니었지만 1991년 걸프전 전후 나타났던 고물가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한편 수십년간 지속된 철권 통치를 무너뜨렸던 2011년 북아프리카·중동 민주화 열풍의 동력도 물가 급등에서 파생된 민생고에서 나왔다.
인플레이션은 투자자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주식과 부동산, 가상통화 등 거의 모든 자산가격이 중앙은행이 만들어낸 저금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직후 행해진 양적완화와 극단적 저금리 환경의 정상화는 필요하지만,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지 못해 금리가 급등하는 시나리오는 자산시장에 재앙이다. 또한 많은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해 있는 문제들인 장기 성장 둔화, 더딘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는 고용률, 전방위적으로 늘어난 부채 등은 급격한 금리 상승이 가져올 부정적 파장이 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대처는 너무 미온적이다.
인플레이션은 고정된 경로로 확산되는 게 아니라, 동적인 과정을 거쳐 현실화된다. 경제는 심리라고들 말하지만, 인플레이션이야말로 경제 주체들의 집단적 심리가 자기강화적으로 나타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고착화되면 재고를 쌓으려는 사재기가 나타나고,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현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매파적 스탠스가 필요한 것은 향후 금리를 여러 번 올려야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긴축지향적 발언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꺾어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은 2022년 3월 테이퍼링 종결, 6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시장의 예상치 그대로였다. FOMC 직후 주식시장은 급등세를 나타내면서 연준의 결정에 환호했지만, 이런 연준의 행보가 장기적으로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중앙은행이 경제 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선제적으로 꺾는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에 중앙은행이 이끌려 오고 있는 형국이다. 인플레이션 압박이 지속되면서 중앙은행이 허겁지겁 금리를 급하게 올려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면 주식시장은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어차피 몇 차례의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관점에서 그렇고, 이런 정도의 금리 인상이라면 자산시장도 큰 충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